작성자 | 동문지기 | 등록일 | 2008-12-04 15:58 | 조회 | 125 회 |
제목 | 2회 동기회 졸업30주년 기념 행사 후기(문무창 동문 글/사진 제공) | 댓글 | 0 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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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지기 | 12-04 15:58 | ||||
2회 동기회 졸업30주년 기념 행사 후기(문무창 동문 글/사진 제공) | |||||
내용 |
전북 의대 2회 졸업30주년 기념행사를 마치고.
지나간 세월은 무척이나 빠르게만 느껴지는 게 사람인 것 같다. 엊그제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것 같은데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앞으로 30년도 이렇게 빨리 지나가겠지 하고 생각하며, 그때쯤은 내가 이 세상 사람으로 남아 있을지를 생각해 보자 문득 아득해 지는 것 같다. 본과 4학년 때 총대를 맡아서 일한 바 있고, 동기들 중 대학과 가장 근거리에서 개업을 하고 있는 게 인연이 되어 10년 전 20주년 행사 준비 위원장을 맡아서 일했던 때가 또한 엊그제 같다. 작년 12월 29일 동기들이 송년의 자리에서 만나서 30주년행사에 대한 논의를 하고, 박철훈 동기를 위원장으로 선임한 바 있었으며, 나는 사정상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박철훈 원장은 행사를 추진하였으나, 금년 2월 말경 갑자기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서 나에게 맡아달라고 청하였으며, 나는 거절을 하다가 강력한 요청에 우여곡절 끝에 3월 초에 20주년에 이어 다시 30주년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내가 인수받을 때까지의 논의된 상황은 30주년은 20주년과는 달리 의과대학과는 무관하게 동기들 중심으로 치르며, 6월쯤에 연휴를 끼고 2박3일로 부부간의 해외여행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약 동기 12가족 정도가 참여의사를 밝혔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으로 진행된 내용은 없었다. 나는 인수를 받자마자 마음이 급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선 12가족이 모두 여행을 갈 수 있는지 부터를 확인해 보았으나 이런저런 사유로 실제로 갈 수 있는 동기가족들은 불과 5,6가족 밖에 되지 않았으며, 이나마도 확실한 게 아니었다. 나는 박원장이 추진해 온 지금까지의 행사방향을 재고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우리 2회는 1972년 60명이 입학하였으나 졸업 당시에는 43명이였으며, 이 중 입학 동기는 34명 이었고 이 가운데 안타깝게도 이승렬, 이정근 두 동기가 작고하였고, 해외에 나가 있거나 연락두절인 동기가 10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개인적인 사유로 참여의 어려움을 호소한 동기들이 있어서 안타깝지만 실질적으로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동기들은 그 수가 20여명을 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작년도 1회 선배들의 행사내용을 파악해 보니 5월 12일 은사님들과 같이 자리를 했고, 6월 초에는 동기들끼리 제주도에 다녀왔었다. 나는 해외여행은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두재균 동기와 협의하여 가능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많은 동기들을 참여시키고, 은사님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행사로 방향을 선회하고, 3월 13일 가까이 있는 동기들과 만나(문무창, 두재균, 김명관, 권혁일, 박철훈) 박철훈 동기로부터 정식 인수인계를 받고 해외여행은 접고, 20주년 때처럼 은사님들을 모시고 30주년 행사를 하고, 다음날 함께 골프를 치는 방향으로 선회를 논의 하고 추진키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4월 13일 웅포 골프장에서 예비모임 성격으로 두 팀의 동기들이 골프 회동을 하며(두재균, 김학경, 권혁일, 문무창, 박성철, 조수철, 이혜수) 중간 점검 및 논의의 기회를 갖고 행사 날짜는 스승의 날과 가장 가까운 5월 17일과 18일(토요일과 일요일) 양일에 치르기로 하고, 장소는 작년 선배들이 행사를 치른 백리향이 현실적으로 가장 적합하여 그 곳에서 치르기로 하였다. 골프장으로는 가장 최근에 건설 되었고, 많은 분들이 자주 가보지 못한 웅포 골프장으로 정하고, 내가 부킹을 맡기로 하였다. 행사당일 5월 17일 우리 동기들은 은사님들보다 30분 빠른 6시30분에 모이기로 하였고, 행사는 7시에 시작하기로 하였다. 시간이 되자 동기들이 한두 명씩 모습을 나타내었고, 뒤이어 은사님들이 한분 한분 들어오셨다. 동기들은 모두 20명이 참가하기로 약속하고, 회비를 납부해 주었으나 6명이 불참하여 14명이 참석 하였고, 최경수 동기의 부인인 윤명숙 여사가 참석하여 15명이 되었다. 당초에는 우리들의 숫자가 많지 않을 것을 예상하여 부부동반을 하기로 하였으나 부부동반의 동기들의 수가 적어서 행사 이틀 전 부부동반을 취소했었다. 은사님들은 많은 분들이 참석 해 주셔서 황인담 학장님을 포함해 15분이 참석해 주셔서 우리 동기들 보다 오히려 한분이 더 많았다. 우리는 오시는 은사님 한분 한분에게 행사 도우미를 통해 가슴에 흉화를 꽂아 드리며 박수로 환영을 하였고, 5개의 테이블에 은사님과 동기들이 동수씩 자리를 잡았다. 10년 전 20주년 행사 때는 황인담 은사님 한분만이 정년퇴임을 하시고, 다른 은사님들은 모두 현직에 계셨으나, 이제는 우리를 가르쳤던 1세대 교수님들은 거의 정년퇴임을 하시고 현직에는 흉부외과 김공수 교수님과 정신과 황익근 교수님 두 분만이 계시고, 그나마 두 분 모두 내년이면 정년을 하신다고 하였다. 30년의 세월이 결코 짧지 않음을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다. 처음 우리를 가르치시던 7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모두들 혈기왕성한 젊은 모습의 은사님들이었는데 이제는 모두 현직을 떠나시게 되다니..... 은사님들의 건강은 거의 대부분 관리를 잘 하셔서 좋아보였다. 특히, 황인담 은사님은 80이 넘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과장하면 60대 초반처럼 젊어보였고, 하대유 학장님도 50대 후반 같은 건강한 모습을 보여 주셨다. 은사님들 외에도 현직 의과 대학원장인 김정수 대학원장님을 행사에 초빙하였으나 해외에 출타 해 계셔 1회 한영진 부원장님께서 참석해 주셨고, 현직 동창회장인 3회 허광렬 회장을 초빙하였다. 자리가 안정되자 전북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두재균 동기의 유창한 사회로 행사가 시작 되었다. 두재균 동기는 총장을 역임하고, 최근에는 전북대 출신이 경영하고 있는 우림건설의 그룹 부회장의 직함으로 의료사업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나는 동기들의 대표로서 인사말을 통해서 많은 은사님들이 뜻 깊은 30주년 행사에 건강한 모습으로 참석해 주신데 고마움을 표시하고 ‘은사님들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세월은 은사님들은 비켜가고, 우리 동기들에게만 흘러간 것 같다.’라고 덕담을 말하고, ‘과거에는 은사님들에게 의학을 배워서 의사가 되었는데, 이제는 은사님들로부터 세월을 정지시키고 건강을 유지하며 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라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은사님들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였다. 황인담 은사님은 은사님 대표 인사말을 통해서 올 해가 의전졸업 60주년의 해라고 말씀하셔 오늘 우리 30주년 행사의 꼭 두 배가 되는 해임을 말씀하시고, 60년의 세월도 지나고 보니 바로 엊그제와 같이 빠르게 지나갔다. 는 말씀을 하시며, 35년 전 의과대학 본과 설립 및 도립병원을 인수 할 때의 초창기의 어려웠던 일들을 말씀하셨다. 뒤이어 후배들의 발전을 기원하며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동기들의 정성을 모은 대학 발전기금을 한영진 부원장님에게 전달하였으며, 곧 이어 나와 신용호 친구의 색소폰 연주가 시작 되었다. 나는 첫 곡으로 60년대 가수 최희준의 노래 ‘빛과 그림자’를 연주하였는데, 음악이 연주되자마자 지금까지 조금은 지루하고 무거웠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되어 보다 화기애애하고, 활력을 갖게 되었으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 월북작가가 정지용 시인이 작사하고 테너 박인수 교수와 가수 이동원이 듀엣으로 부른 ‘향수’를 신용호 친구와 함께 색소폰 듀엣으로 연주하였고, 뒤이어 신용호 친구의 캐니지의 ‘GOING HOME'이 연주되며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었다. 이어 식사를 하며 동기들 한 사람 한 사람씩 나와 인사하고, 각자 자기의 현재의 위치 및 가족관계들을 이야기 했고, 은사님들도 한분 한분씩 나오셔서 정년퇴임 후 현재의 계신곳과 아울러 덕담 등의 말씀을 들려 주셨다. 많은 은사님들이 은퇴 후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이 지켜야 할 도리나 덕목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과거 같으면 한귀로 듣고 흘려 버렸을 내용들이 이제는 자자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걸 느끼며, 우리도 이제는 나이를 들어가고있구나 하는 느낌을 실감할수 있었다. 그 중에 몇 몇 은사님들은 아예 메모를 해서 준비해 오신 분들도 계셨는데, 정읍에서 개원라고 계시는 김완길 은사님은 말씀이 특히 가슴에 닿는다. ’나이 든 사람 지혜롭게 살기‘ 늙은이가 되면 설치지 말고 미운소리 우는소리 헐뜯는 소리, 그리고 군소릴랑 하지도 말고 묻거들랑, 조심 조심 일러주고, 알고도 모르는 척 어수룩 하소. 그렇게 사는 것이 평안하다오. 이기려 하지 마소, 져 주시구려 한 걸 음 물러 서서 양보하는 것,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이라오. 돈, 돈 욕심을 버리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 가졌다 해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 것, 많은 돈 남겨 자식들 싸움하게 만들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많이 뿌려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구려. 그렇지만 그것은 겉 이야기, 정말로는 돈을 놓치지 말고 죽을 때 까지 꼭 잡아야 하오. 옛 친구 만나거든 술 한잔 사주고 손주보면 용돈 한 푼 줄 돈 있어야, 늘그막에 내몸 돌보고 모두가 받들어 준다나 우리끼리 말이지만 사실이라오. 옛날 일들이랑 모두 다 잊고 잘난체 자랑이랑 하지를 마소, 우리들의 시대는 다 지나갔으니 아무리 버티려고 애를 써 봐도 이 몸이 마음대로 되지를 않소. ‘그대는 뜨는 해, 나는 지는 해’ 그런 마음으로 지내시구려. 나의 자녀 나의 손자 그리고 이웃 누구에게든지 좋게 뵈는 늙은이로 살으시구려, 멍청하면 안되오, 아프면 안되오, 늦었지만 바둑도 배우고 氣체조도 하시구려, 아무쪼록 오래 오래 살으시구려. 최기철 은사님도 한바탕 웃음말을 준비 하셨다. ‘웃어 봅시다.’ 1. 늙은이의 후회. 1) 좀 더 참을걸. 2) 좀 더 베풀걸. 3) 좀 더 즐길걸. 2. 신세대 속담. 1) 예술은 지루하고 인생은 아쉽다. 2) 버스 지나가면 택시 타고 가라. 3) 길고 짧은 것은 대봐도 모른다. 4) 젊어서 고생 늙어서 신경통이다. 5) 호랑이 한테 물려가도 죽지만 않으면 산다. 6) 윗물이 맑으면 세수하기 좋다. 7) 고생 끝에 병이 든다. 8) 아는 길은 곧장 가라. 9) 못 올라갈 나무는 사다리 놓고 올라가라. 10) 서당개 삼년이면 보신탕 감이다. 3. 웃기는 남자. 1) 50대 : 사업 한다고 대출 받는 남자. 2) 60대 : 이민 간다고 영어 배우는 남자. 3) 70대 : 골프 안 맞는다고 레슨 받는 남자. 4) 80대 : 거시기 안 된다고 비아그라 먹는 남자. 5) 90대 : 여기저기 아프다고 종합검진 받는 남자. 은사님들과 동기들의 덕담을 들으며, 흥겹고 즐거운 시간이 계속 되었다. 과거 학생 때는 우리 동기들을 대표하는 환상적인 듀엣으로 허영상, 조수철 동기의 통기타 듀엣이 있었으며, 의과대학 뿐 만 아니라 전북대학 전체에서도 명성이 자자하였으나, 35,6년의 세월 속에 오늘은 들을 수 없는 게 아쉬웠고, 대신에 신용호 동기와 나의 색소폰 연주로 대신하게 되었다. 동기들과 은사님들의 말씀 중간에 나는 평소 좋아하던 ‘I CAN'T STOP LOVING YOU' 한곡을 더 하여 분위기를 한껏 고조 시켰고, 마지막으로는 조용필의 ’친구여‘로서 많은 동기들과 은사님들의 뜨거운 분위기를 돋울 수 있었다. 9시 30분쯤 되어 행사를 마치며, 은사님들과의 아쉬운 작별을 고하며 준비한 기념품들을 은사님들 한 분 한분과 동기들에게 나누어 주고, 우리 동기들은 전북대 구 정문 앞에 있는 카페에 가서 맥주한잔씩을 기울이며 뒤풀이를 하고, 다음날 골프를 기약하며 첫날의 행사를 마무리 하였다. 다음 날 웅포 골프장에서 골프는 비교적 이른 시간인 7시부터 있었다. 늦으면 덥기도 하려니와 또 멀리 가야 할 분들도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은사님들은 9분인데 동기생들은 7명밖에 안되고 더구나 동기중한명은 이혜수 선생이어서 모셔야 할 은사님보다 동기생들의 숫자가 적어 어려움이 있었으나, 조수철 동기의 지혜로 은사님들을 잘 모실 수가 있었으며, 또 남은 자리는 내년 3회 졸업생의 30주년에 대비해 3회 홍준의 원장을 오늘만은 2회로 승격(?)시켜서 참여시켜 내년행사에 대한 벤치마킹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동기부인들이 참여하여 팀을 구성하였다. 웅포 골프장은 금강하구에 위치하여 강을 끼고 조성돼 있는 골프장으로 경관이 아름다웠고, 5월의 푸르른 자연과 더불어 잔디의 상태도 비교적 양호 하여서, 대부분 처음 오시는 은사님과 동기들 모두 매우 만족한 모습이었다. 특히, 황인담 은사님은 83세의 적지 않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미를 보이셨으며, 하대유 은사님도 20여 년 전 처음 뵈었을 때 못지않은 드라이버 샷 을 보여주시는 등 모든 은사님들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는 것을 동기생들에게 과시하는 듯 보였다. 5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우리들도 과연 저 연세가 되어 저만한 건강을 유지하고, 골프를 칠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골프가 끝나고 클럽하우스에서 유유히 흐르는 금강물을 내려다보고, 시원한 맥주를 한잔 씩 들이키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모두들 은사님들의 건강과 만수무강을 빌며 10년 후 40주년이 될 때 까지도 건강하기를 기원했고, 우리 동기들 모두의 건강 과 행복을 기원하였다. 조수철 동기는 골프 선물로 자신이 감명 깊게 읽었던 책 두권을 준비 해 은사님과 동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권은 조선정조 때의 이덕모 선비의 이야기로 “책만 보는 바보” 이고 다른 한권은 1년에 3개월씩 동남아 오지에서 원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사는 노부부의 이야기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부자” 라는 책이다. 30주년 골프행사로 마음의 양식이 될수 있는 좋은 책을 선정해준 조수철 동기에게도 감사 드린다. 끝으로 밖으로 나와 클럽하우스를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마지막으로 1박2일 간의 모든 행사를 마감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이 글을 쓰기 얼마 전인 지난 8월 초 어느 날 나는 익산에서 개업하고 있는 어느 동문으로부터 박철훈 동기가 아침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화를 받았다. 나는 갑자기 뒷머리를 무언가로 맞은듯한 자그마한 충격을 느끼며, 행사 얼마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행사가 끝나고 몇 번의 연락을 시도 하였으나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인지 연락을 끊었던 박원장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까지 빨리 운명을 달리 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 이제 이승렬, 이정근 동기에 이어 또 한 동기가 먼저 떠났구나.. 하는 허탈하고 아쉬운 생각과 함께 이제는 싫든 좋든 모든 걸 하나하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기가 된 것을 인정해야 하는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후 인 40주년은 훨씬 더 빨리 다가 올 텐데... 라는 생각과 함께 그때에도 많은 은사님과 동기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볼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마지막으로 먼저 고인이 된 박철훈 동기의 명복을 빈다. -문무창 동문 제공(2회/13대 동창회장/전주 현대영상의학과의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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